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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씨 아재의 이야기 바구니/다른 나라 이야기

국제 곡물 시장과 곡물 가격 상승 추세 이해하기

by 공릉 2022. 5.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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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해 국제 곡물 가격이 급등하면서 전 세계 모든 나라에서 애그플레이션(농업을 뜻하는 agriculture와 물가상승을 의미하는 inflation의 합성어. 농산물의 가격이 오르면서 일반 물가가 상승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세계은행의 원자재 시장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말까지 밀 가격이 40% 오르는 것을 비롯해 곡물 가격이 22.9%나 치솟을 것이고, 이러한 곡물 가격과 원자재의 상승 추세는 2024년 말까지 지속될 전망이다.

옥수수 국제 가격 상승은 사료비 상승의 주된 요인으로 작용하여 축산물 가격을 상승시키고, 밀과 대두 국제 가격 상승은 이를 원료로 하는 다양한 가공품 가격 상승으로 이어져 소비자물가 상승의 원인이 된다.

 

그러나, 이러한 곡물 가격 상승 추세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생겨난 것이 아니다. 이미 2008년 식량 위기 사태와 2012년 러시아발 곡물 가격 급등을 거치면서 곡물 가격은 지속적인 상승 추이를 보여왔다. 아마도 러시아는 천연가스뿐만 아니라, 곡물 시장에 대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영향력을 최대한 활용한다면,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예상되던 서방의 경제 제재를 최소화할 수 있다고 판단하여 전쟁을 시작했을 것이다.

 


국제 곡물 시장과 국제 곡물 가격 상승 추세에 대해 이해하기

 

1.국제 선물 거래소 현황

 

  ▶ 국제 곡물 거래량의 80%를 차지하는 시카고 상품 거래소(CBOT)

시카고-상품-거래소
CBOT 로고

우선 국제 곡물 시장과 가격 추세를 알아보기 전에 곡물이나 원자재 등이 국제적으로 어떻게 거래가 이뤄지고 있는지 표면적으로라도 알아볼 필요가 있다. 이걸 알아야 곡물 시장의 특성이나 곡물 가격이 다른 상품들에 비해 얼마나 취약한 구조인지를 알 수 있다.

 

국제 곡물 거래량의 80%가 거래되는 시장은 시카고 상품 거래소(Chicago Board of Trade: CBOT)이다.  CBOT는 1848년 설립된 세계 최초, 최대의 선물거래소로, 1800년대 불합리한 농산물 유통구조로 가격 변동이 심했던 미국의 상황에서 곡물 가격을 안정시킬 수 있는 제도적 장치와 거래조건의 표준화를 위해 설립되었다. 하지만, 거래소의 규모가 커지고 현물 시장만으로는 곡물 유통 가격을 안정시키는 데 한계를 보이자 이후 농산물 그 자체보다는 농산물 인도 계약의 권리를 사고파는 선물 거래가 주된 거래 형태로 자리 잡게 되었다. 곡물은 생산량이 다양한 요인에 의해 쉽게 영향을 받기 때문에 미래의 작황을 예측하기가 매우 어려운 상품이다. 따라서 안정적인 가격에 미리 물량을 확보해 놓을 수 있는 선물 거래에 가장 적합한 상품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CBOT(Chicago Board of Trade)는 CME(Chicago Mercantile Exchange) 그룹에 속해 있다. CME Group은 시카고 상업 거래소(CME), 시카고 상품 거래소(CBOT), 뉴욕 상품 거래소(NYMEX) 및 COMEX(금 선물 거래소)의 4개 거래소로 구성된 세계 최고의 다양한 파생 상품 시장이다.

 

주요 국제 선물 거래소 개괄

시카고-상업-거래소-로고
CME 그룹 로고

위에서 언급한 CME(Chicago Mercantile Exchange)와 CBOT(Chicago Board of Trade: CBOT)는 한국에서 모두 "시카고 상품 거래소"라고 지칭한다. 분명히 다른 거래소임에도 혼용하여 사용하다 보니 혼란이 일어나기도 하는데, 우리나라는 보통 곡물 거래에 대한 관심이 높고 관련 기사가 많이 나오기 때문에 시카고 상품 거래소라고 하면 CBOT를 지칭하는 경우가 많다. 이 포스팅에서는 CBOT를 시카고 상품 거래소로, CME를 시카고 상업 거래소로 지칭한다.

 

CME와 CBOT를 비롯한 주요 국제 선물 거래소는 아래와 같다.

선물 거래서 주요 거래 품목
시카고상품거래소(Chicago Board of Trade) 옥수수, 소맥, 대두, 대두유(Soyoil), 대두박(Soymeal), 귀리 (Oats), 쌀(Rough 
Rice), 에탄올(Ethanol)
시카고상업거래소(Chicago Mercantile
Exchange)
돈육(Lean Hogs), 냉동삼겹살(Frozen Pork Bellies), 육성우(Fee der Cattle), 
비육우(Live Cattle), 버터, 우유
ICE Futures U.S. 커피, 원당, 코코아, 원면, 냉동농축오렌지쥬스(Frozen Concentrated Orange
Juice)
ICE Futures Canada 유채(Canola), 보리(Western Barley)
동경곡물거래소(Tokyo Grain Exchange) 옥수수, 대두, Non-GMO 대두, 팥(Azuki Beans), 아라비카 (Arabica) 커피, 
로부스타(Robusta) 커피, 원당, 원견(Raw Silk)
태국농산물선물거래소(Agricultural Futures
Exchange of Thailand)
백미(White Rice 5%), 향미(Thai Hom Mali Rice 100% Grade B), 천연고무
(Natural Rubber Ribbed Smoked Sheet No.3), 타피오카 칩(Tapioca Chip)
정주상품거래소 (Zhengzhou Commodity 
Exchange)
경질백맥(Hard White Wheat), 강글루텐 소맥(Strong Gluten W heat), 깍지콩(Green Beans), 원면, 백설탕, 유채유(Rape seed Oil)
대련상품거래소 (Dalian Commodity 
Exchange)
No. 1 대두(Non-GMO 대두), No. 2 대두, 대두박, 대두유, 팜유 (Palm Olein)

 

2. 국제 곡물 시장의 특징 

출처 : SWB

생산량 대비 교역량이 적은 Thin Market

국제 곡물시장은 대표적인 Thin Market(일반적으로 판매자와 구매자가 소수인 시장을 지칭)이다. 어느 국가든 식량 주권의 안정적 확보를 위해 우선적으로 곡물의 국내 공급을 중시한다. 따라서 국제 곡물시장에서 거래되는 물량은 생산량 가운데 국내 소비를 제외하고 남은 일부로 생산량 대비 교역량의 비중이 매우 적다. 

쌀의 생산량 대비 교역량은 7~8%에 불과하며, 옥수수와 밀의 교역 비중은 20% 안팎이다. 대두의 교역비중은 25~ 30%로 다른 곡물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지만, 비농산물의 평균 교역 비중 45~60%와 비교하면 매우 낮은 편이다.

 

따라서, 국제 곡물 시장은 식량 위기 상황이 발생하면 공급이 더욱 위축되고 공급량이 현저히 감소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공급자 과점 시장

국제 곡물시장은 주요 4~5개 수출국이 전체 교역량의 대부분을 공급하고 있는 반면, 수십 개 국 이상이 수입국인 전형적인 공급 과점구조다. 여기에 소수 다국적 곡물 메이저 기업들이 국제 곡물 교역의 상당 부분을 장악하고 있어 공급자 교섭력이 매우 큰 특징을 가지고 있다. 카길과 ADM, LDC, 벙기(Bunge) 등 소위 4대 곡물 메이저는 세계 곡물 유통량의 2/3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전 세계의 곡물 거래량의 40~50%를 차지하는 밀의 경우를 살펴보면, 전 세계 교역량은 연간 1.2~1.4억 톤으로 전체 생산량의 약 20% 수준이며, 미국, EU, 캐나다, 호주 등 세계 4대 밀 수출국이 세계 전체 수출의 70%를 차지하고 있다. 반면 밀은 밀 생산량 1위와 2위인 중국과 인도조차 수입을 하고 있을 정도로 전 세계 모든 나라들이 수입국이라고 할 수 있다. 

 

리스크 관리가 어려운 시장

국제 곡물시장의 가장 큰 특징은 "곡물" 그 자체의 특징이다.

곡물은 생산하는데 있어 공산품이나 원자재에 비해 자연적 영향(날씨, 온난화 등), 지정학적 영향(전쟁, 분쟁 등), 사회경제적 영향(국제 비료값, 인건비 등), 생산국의 정책 변화(산업 정책, 수출 정책) 등에 매우 민감한 상품이다. 따라서 모든 변수를 통제할 수 없으며, 가격의 급등이 빈번히 나타난다. (급락은 과점시장이기 때문에 자주 나타나지 않는다.)

또한, 곡물은 단기적으로 생산량을 늘리기도 어렵고, 쉽게 변질되기 때문에 장기 보관도 까다로우며, 모든 곡물은 상호 간에 대체제의 성격이 강하여 한 품목의 가격이 상승하면 나머지 품목들도 따라 오르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3. 곡물 가격 상승 원인은 전쟁만이 아니다.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의 영향

곡물 가격은 코로나19 판데믹의 여파로 이미 2020년 하반기부터 뚜렷한 상승세를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흑해 지역 수출 비중이 높은 밀, 옥수수, 보리를 중심으로 가격이 급등하고 있는데, 2022년 3월 시카고 상품거래소(CBOT) 선물 가격은 전년 동월 대비 각각 137.7%, 102.1%, 72.0% 상승하였다. 

세계-식량-가격-지수
출처 : TRADLINK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옥수수, 밀, 보리, 해바라기유의 주요 생산국이자 수출국이다.
우크라이나의 세계 곡물 교역량 점유율은 옥수수 14%, 밀 9%, 보리 10%, 해바라기유 43%이며, 러시아는 밀 20%, 보리 14%, 해바라기유 20%이며, 이 두 나라는 주로 유럽과 중동, 동남아시아, 중국 등에 곡물을 수출하고 있다. 특히, 유럽은 우크라이나를 유럽의 빵 바구니라고 부를 정도로 우크라이나산 밀에 대한 의존도가 높고, 러시아의 천연가스 의존도 역시 40%를 넘기 때문에 전쟁으로 인한 인플레이션 직격탄을 맞고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곡물 가격의 상승 추세는 2024년 말까지 지속될 전망이다.

 

2008년 이후 곡물 가격 상승세와 2008년 식량 위기

하지만, 국제 곡물 가격은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 탓만으로 오르는 것은 아니다.

단기적으로는 2020년부터 코로나19의 영향으로 가격이 큰 오름새를 보이고 있었으며,

장기적으로는 2008년 전 세계 식량 위기 이후로 상승세를 지속하고 있었다.

2008년 식량 위기는 국제 곡물 시장이 얼마나 쉽게, 다양한 이유로 인해 급등할 수 있는지를 전 세계에 보여줬으며, 다국적 곡물 메이저 기업들의 시장 장악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이러한 시장의 약점은 국제 곡물 시장에 뛰어드는 단기 투기 자본의 규모를 크게 증대시키는 결과를 불러왔고, 단기 투자 자본에 의한 시장 가격 왜곡이 심해지면서 곡물 가격 상승세는 피할 수 없는 상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2000년 이후 곡물 가격 상승 추세 (출처 : 농촌경제연구원 화면 캡처)

2008년 식량 위기

2006년말부터 2008년 상반기까지 약 2년간 세계 곡물 가격이 급격히 상승하여 전 세계적으로 저개발국가와 선진국 양쪽 모두에 정치적, 경제적 불안정을 심화시킨 사건을 약칭하여 2008년 식량 위기라고 부른다. 

곡물 가격 폭등에 따른 식량 위기는 주로 아시아와 아프리카에 큰 영향을 주었는데, 우즈베키스탄,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스리랑카, 남아프리카 공화국,부르키나파소, 카메룬, 세네갈, 모리타니, 코트디부아르, 이집트, 모로코, 멕시코, 볼리비아, 예멘 등의 국가들에서 폭동이 발생했다.

 

2008년 식량 위기의 원인은 크게 단기적인 원인과 장기적인 원인으로 나눠서 얘기할 수 있다.

이 중 장기적인 원인으로 인해 2008년 이후 곡물 가격은 상승세를 지속하고 있다.

* 단기적인 원인

  • 곡물 생산 국가들의 가뭄(특히 2007년 호주의 밀 흉작)
  • 원유가격의 상승에 따른 생산 단가 상승

* 장기적인 원인

- 신흥국들의 전체적인 소득 수준 향상으로 신흥국의 곡물 소비량이 급증. 특히 아시아 지역은 중국과 인도,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의 동반 경제 성장과 그로 인한 식량 수요 증가로 곡물 소비량 급증을 이끌고 있다.

- 지구 온난화가 심화되면서 예측하기 어려운 기후 재난이 매년 반복되는 까닭에, 매년 곡물의 작황이 불안정해지고 곡물 선물 가격이 오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 선진국의 바이오 연료 사용 본격화. 미국을 시작으로 바이오 메탄, 바이오 에탄올 등의 사용이 의무화되거나 장려되면서, 위의 곡물 가격 추세 그래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대두 가격이 밀이나 옥수수에 비해 큰 폭으로 오르고 있다.

특히 미국은 2005년, 바이오 에너지의 생산량을 늘리려는 취지의 에너지정책법(Energy Policy Act of 2005)을 공포했는데, 이로 인해 미국이 생산하는 옥수수의 35%가 바이오에탄올 생산에 투입되며, 옥수수의 국제 선물 가격을 평균 60% 이상 상승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텅 비어가는 곡물 창고 (출처 : AHDB)

2012년 기후 변화로 인한 곡물 가격 급등

2010과 2011년도 세계 곡물 생산량은 전 세계적인 이상기후로 전년보다 2% 감소하고, 소비량은 2.4% 증가하는 등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그런 상황에서 2012년 세계 최대의 밀, 옥수수, 콩 수출국인 미국과 러시아에 불어닥친 이상 고온과 가뭄은 단 두 달 만에 밀의 국제거래 가격을 40% 이상 폭등시키는 결정타로 작용했다. 특히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밀수출을 금지하고, 미국에 불어닥친 가뭄으로 옥수수 가격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면서 다시 한번 전 세계적인 식량 위기가 발생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었으나, 2008년 식량 위기에 크게 고생했던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의 신흥국들이 밀 경작지를 크게 늘린 덕분에 예상보다 위기가 크게 확산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소말리아에서만 26만 명 이상이 사망하는 등, 아프리카나 아시아의 저개발국들의 피해는 피할 수 없었다.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서방이 러시아 경제 제재를 시행하고, 이에 대항하여 러시아가 6월 말까지 밀, 호밀, 옥수수, 보리 등의 수출 제한에 나서면서 이미 국제 밀 가격은 21%, 보리 가격은 33%나 올랐으며, CBOT의 톤당 밀 선물 가격은 전쟁 전보다 70% 이상 급등한 상황이다. 또한, 러시아뿐만 아니라, 주요 곡물 수출국들 역시 식량 안보를 이유로 잇따라 수출 제한 조치를 취하고 있어 2008년에 못지않은 전 세계적인 식량 위기가 재현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 인도네시아 : 최대 팜유 수출국, 팜유 원유(CPO), RBD 팜유, 식용유, RBD 팜올레인 등에 대한 수출 중단
  • 아르헨티나 : 화물 운송 업체들의 파업으로 실질적으로 모든 곡물의 수출이 중지된 상태이며, 옥수수, 대두에 대한 수출 중단
  • 터키 : 최대 밀가루 수출국, 밀가루 수출 중단
  • 헝가리 : 모든 곡물 수출 중단
  • 몰도바 : 밀, 옥수수, 설탕 수출 중단

외식-가공식품-물가-상승률
외식, 가공식품 물가상승세 추이 (출처 : 머니투데이)

우리나라는 곡물 수입 의존도가 매우 높은 나라로, 세계 7위의 곡물 수입국이고, 식량 자급률은 45.8%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저 수준이라고 한다. 또한,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수입 곡물 가격이 10% 상승하면 국내 소비자 물가는 0.39% 포인트 오른다고 하니 곡물 가격 상승에 따른 인플레이션은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결국 우리나라는 그동안 WTO 가입을 시작으로 미국과 EU, 칠레 등과 FTA를 체결하면서 매번 농업을 희생시켰던 비용을 크게 지불해야 할 시기가 온 건지도 모른다. 이번 식량 위기가 더욱 불안해 보이는 것은 원자재 공급 문제와는 다르게 공급망을 다변화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국제 곡물 가격 폭등과 그에 따른 국내 인플레이션에 대한 발 빠른 대처가 며칠 후에 출범하는 새 정부의 가장 큰 과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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