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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씨 아재의 이야기 바구니/우리 나라 이야기

탄소 중립과 탈원전의 딜레마에 빠진 지구촌

by 공릉 2023. 5.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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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 중립이 왜 중요한지, 원자력 발전을 왜 줄여나가야 하는지, 아주 구체적으로는 알지 못하더라도, 어느 정도 인지는 하고 있고, 이러한 에너지 정책 방향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에 대부분 동의하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지난 대통령 선거 결과로 들어설 대한민국의 새 정부는 지난 정부에서 줄이기 위해 노력했던 원자력 발전소를 다시 늘려 나가겠다고 공언하고 있고, 실제 가동을 중단하기로 했던 노후 원전들에 대한 안전성을 재평가하여 속속 가동 연한을 갱신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탄소 중립과 탈원전의 딜레마

 

한국_원자력_발전소_수명
한국원자력 발전소 수명 현황 (출처 : 연합 뉴스)

 

개인적으로 원자력 발전을 줄여나가야 한다는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만,

대한민국이 탄소 중립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원전 이외의 대안이 없다는 지적에도 동의합니다.

현재 우리나라 전체 에너지 발전량의 7%에 불과한 신재생 에너지 발전 비중을 2030년까지 30%까지 늘리겠다는 정부의 발표는 현재 상황에서 봤을 때 어림 반 푼어치도 없다고 생각하고, 무계획적으로 벌목을 자행하여 산에 태양광 패널을 놓는 것은 더더욱 반대합니다. 우리나라는 8가지 재생에너지(태양광, 태양열, 풍력, 수력, 지열, 해양, 바이오 에너지, 폐기물)와 세 가지 신에너지(수소, 연료전지, 석탄액화가스) 가운데 상업화가 가능한 수준으로 대량 생산할 수 있는 건 하나도 없습니다. 그나마 새만금 간척지에 총 3GW 규모의 육상 + 수상 태양광 발전 단지를 만들고 있고, 전북 서남권과 전남 신안, 울산·동남권 등지에 대규모 해상풍력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습니다만, 어민들의 조업권을 침해할 수밖에 없는 해상풍력발전이 빠르게 추진될 것 같지 않습니다.

또한, 원전을 없애기 전에 먼저 미세먼지의 원흉인 석탄 화력발전소를 먼저 없애야 한다고 생각하며, 화력 발전소는 적어도 천연가스를 이용한 발전소가 아니면 탄소 중립을 위해서 모두 선제적으로 없애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더 모자라게 되는 전력은 어디서 보충할지 선택해야 합니다. 결국 또 원전 이외의 선택지가 떠오르지 않습니다.

출처 : 탄소중립녹색 성장 위원회 홈페이지

 

탄소 배출도 줄여야 하고, 원자력 발전소도 줄였으면 좋겠고...

대한민국이 처해 있는 이러한 딜레마는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닌 듯합니다.

현재 원자력 발전소를 52기 가동하고 있는 중국은 2060년 이전에 탄소 중립을 달성하기 위해 원전을 무려 170기까지 추가 건설할 방침이라고 하고, 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고를 겪은 후 원전 가동 중단을 선언했던 일본도 원전 재가동에 돌입했으며, EU 역시 유럽 10개국의 경제 및 에너지 장관 16명이 ‘우리 유럽인은 원자력이 필요하다’라는 제목의 공동 기고문을 지난해 10월 11일 각국 주요 일간지에 게재하면서, 각 정부들이 물 밑에서 검토하던 원전 추가 건설 계획들이 속속 공론화되고 있습니다.

세계_주요국_원자력_발전량
출처 : 머니투

전 세계의 원자력 발전 현황

2021년 11월 1일 기준으로, 33개 국가에서 442기의 원자로가 운영 중에 있으며, 총 설비 용량은 394.5GW입니다. 지역별로는 북미 112기, 극동아시아 112기, 서유럽 104기, 중앙 및 동유럽 74기, 중동 및 남아시아 31기, 남미 7기, 아프리카 2기가 운영 중이라고 합니다.

국가별로는 미국이 93기(95.5GW)로 원자로가 가장 많으며, 프랑스 56기(61.4GW), 중국 52기(49.6GW), 일본 33기(31.7GW), 러시아 38기(28.6GW), 한국 24기(23.2GW) 순으로 많습니다.

또한, 2030년까지 건설 예정인 신규 원자로 수량과 도입 검토 중인 원자로 수량을 합하면 500여 기, 550GW에 달합니다.

동일본 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인해 세계 여러 나라들이 너도나도 탈원전을 선언했던 것 같은데, 실상은 지금 다시 살펴보면 모두들 탈원전이 현실적으로 어려웠는지, 다시 원전에 매달리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탈원전 선언을 고수하고 있는 나라는 독일이 유일하고, 원전의 점진적인 감축을 선언했던 프랑스는 감축이 아니라, 추가 원전 건설을 공식화했습니다.

 

크루아스마이스
프랑스의 크루아스마이스(Cruas-Meyss) 원전 사진 (출처 : WNN)

세계 주요국들의 원자력 발전 관련 세부 현황 및 정책 방향은 아래와 같습니다.

* 미국

  • - 2021년 10월 현재 93기(설비용량 95,523MW)의 원자로를 가동 중, 2기의 원자로(2,234MW)를 건설 중, 24기(17,540MW)의 원자로를 해체 중임.
  • - 미국은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투자를 집중하면서 원자력 발전과정에서 발생하는 열에너지를 활용한 수소 생산 시범사업을 진행 예정

* 캐나다

  • - 현재 19기의 원자로(13,624MW)를 가동 중, 6기의 원자로(2,143MW)가 영구 정지됨.
  • - 캐나다는 대용량 원자력 발전소 건설보다는 2018년 발표한 SMR 로드맵(Canadian Roadmap for Small Modular Reactors)에 따라 300MW 이하의, 발전 용량은 작지만, 안전한 초소형 원자로 개발 및 실증 사업에 주력하고 있음.

* 스웨덴

  • - 1979년 미국의 스리마일섬 원전 사고 후 1980년 국민 투표를 통해 단계적 원전 영구 정지를 결정했지만, 2010년 6월 스웨덴 의회가 이를 철회하고 기존 원전 부지에 노후 원전을 대체할 신규 원전 건설이 가능하도록 법을 개정
  • - 2021년 11월 기준 총 6기(6,882MW)의 원자로 가동 중
  • - 스웨덴 정부는 지난해 기존 원전 인근의 사용후 핵연료 중간저장시설 확장 계획을 승인하여 기존 원전의 계속 사용과 신규 원자로 추가 건설 가능성을 확보

* 프랑스

  • - 총 56기의 원자로(총 발전용량 61.370MW)를 운영 중, 원자로 1기(1,630MW 급 Flamanville 3호기)를 건설 중, 2050년까지 8기 추가 건설 예정
  • - 지난해 10월, 프랑스 송전공사(RTE)가 ‘2050년까지 탄소 순배출량을 제로로 만들 수 있는 가장 경제적인 방법은 14개의 신규 원자로를 건설하는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했고, 마크롱 대통령은 300억 유로 규모의 ‘프랑스 2030 투자 계획’을 통해 SMR(Small Modular Reactors) 개발 및 원자력을 활용한 수소 생산에 투자할 계획임을 발표

* 영국

  • - 총 13기의 원자로(총 발전용량 7,833MW)를 가동 중, 원자로 2기(1,720 MW 급) 건설 중
  • - 2020년 11월 영국 정부는 원자력 산업 부문에서 '대형 원전 건설 기간 최대 10,000개의 일자리 창출, 최대 3억 파운드 규모의 SMR 민간 투자 촉진, 2백만 가구에 원자력 기반의 청정에너지 공급' 목표 발표

후쿠시마_원전_폭발_사고
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고 (출처 : ClimateAction)

* 일본

- 2021년 11월 기준 33기(31,679MW) 가동 중, 3기(4,141MW) 건설 중. 기존 원자로 33기 중 25기에 대해 강화된 안정성 적합 심사를 실시해 10기 재가동

- 후쿠시마 원전 사고 직전 54기를 운영했지만, 사고 후 현재까지 21기(15,877MW)가 영구 정지됨.

- 일본 정부는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확충에 주력하고, 석탄화력 발전은 절반 이하로 줄여나갈 계획이며, 원전을 추가로 짓지는 않지만 현재 가동 중인 원전은 계속 유지할 예정

- 일본 역시 미쓰비시 중공업 등 원전 관련 기업들이 SMR 연구 개발에 매진하여 설계 기술을 확보한 상황

중국_원자력_발전소_분포
2019년 중국 원전 현황 및 위치도 (출처 : 중앙일보) 중국 원전이 터지면 편서풍의 영향으로 한국과 일본이 중국 본토보다 피해가 클 수 있음

* 중국

- 52기의 원전(49,589MW)을 가동 중, 13기의 원전(13,675MW)을 건설 중

- 중국은 2021년 3월 발표한 제14차 5개년 계획에서 2025년까지 원전 설비용량을 70GW로 증가시키겠다는 계획을 발표함. 한국 언론들의 보도에 따르면 2050년까지 총 100개 이상의 원자로를 추가 건설할 전망

- 중국은 석탄화력발전소 의존도를 낮춰 탄소 중립(2030년 온실가스 배출량, 2005년 대비 60% 수준)과 대기 오염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고자 원자력 발전에 집중

- 중국은 프랑스와 미국으로부터 경수로 관련 기술을 도입하여 빠르게 기술 국산화에 성공한 후 SMR 등의 개발에도 뛰어들었으며, 세계에서 사용되는 거의 모든 종류의 원자로 노형에 대해 독자 기술 개발을 진행 중임. 이미 아르헨티나 원전 공사를 수주하기도 했고, 해외 원전 수주에 적극 뛰어든 상태임.

* 독일

-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계기로 노후 원전을 폐쇄했으며, 2022년까지 모든 원전을 단계적으로 폐쇄하기로 결정

- 2021년 10월 13일 25명의 저명한 독일 및 해외의 학자, 환경운동가, 작가 등은 독일 매체인 Die Welt에 서한을 게재해 원전 폐쇄 시행으로 2030년 기후 목표 달성이 어려울 수 있으므로 원전 가동 중단을 연기할 수 있도록 법안 개정을 촉구하였으나, 독일 정부가 이를 거절하고 원전 폐지 방침을 재확인함. 멋지다... 부자답다...

 

이상과 같이, 세계 원전 주요 국가들은 원전을 포기하면 탄소 중립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원전을 계속 추진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러면서도 후쿠시마 원전 같은 사고가 발생했을 때를 대비하기 위해 기존 대형 원전에 비해 유연성을 가질 수 있는 소형모듈화원자로(SMR)에 대한 연구 개발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소형화되어 안전성이나 유연성이 증가하는 대신 SMR은 원전의 가장 큰 장점인 경제성을 크게 떨어뜨립니다. 원자력으로 1500MW의 발전을 한다고 했을 때, 크게 하나만 지어도 되는 원자로를 결국 300MW 원자로 5개로 대체한다고 하면, 건설 비용이나 운영비용이 더 증가할 수밖에 없습니다. 원전 기술력이 가장 앞서는 미국이나 유럽 국가들이 SMR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는 것은, 현재 기술력으로는 대형 원자로가 후쿠시마 사고 같은 천재지변을 당했을 때 폭발을 방지하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 국경 인근에 위치한 체르노빌 원전 사고가 났을 때, 가장 피해를 본 국가는 우크라이나가 아니라 바로 이웃 국가 벨라루스였습니다. 사고 당시 불던 비바람은 방사능 낙진을 그대로 벨라루스로 이동시켜 퍼부었습니다. 우크라이나는 160여 개의 마을이 방사능 오염으로 폐쇄됐지만, 벨라루스는 480여 개의 마을이 폐쇄됐습니다. 계절에 따라, 바람 방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웃 국가의 원전 사고는 주변국에도 치명적인 피해를 안겨줍니다.

 

체르노빌_원전_폭발
체르노빌 원전 사고 후 모습

원자력 발전소는 사고 발생 시 장기적이고 치명적인 피해가 발생하고, 핵폐기물 처리에 대한 획기적인 기술 개발이 이뤄지지 않는 한 매우 매우 비싼 에너지 발생원입니다. 심지어는 최근 신재생에너지의 발생 단가가 하루가 다르게 떨어지면서 이미 원전보다 W 당 발전 단가가 저렴해진 나라도 많이 있습니다.

반면에 유일하게 탈원전을 이뤄가고 있는 독일은 올 들어 바람이 불지 않아 풍력 발전이 멈추자 모자란 전기를 프랑스에서 사 오고 있다는 뉴스도 나오고 있습니다.

원전을 계속 유지해 갈 것이냐, 중단할 것이냐는 정말 신중하게, 모든 가능성을 다 열어놓고 고민한 후 결정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원전을 계속 유지한다면 최소한도로, 최고의 안정성을 확보하는 방안을 함께 고민하고 국민들에게 충분히 설명해 줘야 합니다.

국내에서 원자력 발전을 재개해야 하네, 말아야 하네 하는 논쟁을 보다 보면 어이없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탈원전을 주장하는 측도 단순한 의지 표명이 아니라 현실 가능한 대안을 명확하게 제시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고, 원전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측도 그 위험성이나 비용에 대해 얼버무리거나 거짓말로 때우기 일쑤입니다.

제가 이 포스팅을 올리는 이유는 다른 나라들도 원전으로 회귀하고 있으니 우리나라도 원전으로 회귀해야 한다고 우기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인류는 인류의 미래를, 인류가 살고 있는 이 지구를 지키기 위해 탄소 중립이라는 매우 중요한 합의를 도출했지만, 이를 위해 인류의 미래를, 우리의 지구를 위협할 수도 있는 또 다른 위험을 늘려나가야 하는 어려운 결정의 순간에 도달해 있습니다.

단기적으로 원전이 증가하는 것은 어쩔 수 없을 듯하지만, 2050년 탄소 중립이 성공할 때까지, 반드시 원자력의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는 획기적인 기술 진보가 이루어져 지구가 불안해하지 않을 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라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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